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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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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정광천 |
조회수 |
26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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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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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7-11-19 16:4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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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삼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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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삼매에 빠졌다는 표현이 있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이 경우의 삼매는 '다른 말 아래 쓰이어, 그 일에 열중하여 여념이 없음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그리고 '불교에서, 잡념을 버리고 한 가지 일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일'이라는 뜻풀이도 나온다. 삼매는 범어의 사마디(Samadhi)를 한자로 옮겨 적은 말이며, 사마디는 동사인 사마다(Sama-dha)에서 파생된 명사형이다. Sam은 함께, a는 가까이라는 뜻의 접두어, dha는 두다라는 뜻의 동사 어근이다. 결국 사마다는 함께 두다, 모아 두다 정도의 의미를 지니는 셈이다. 결국 한 곳에 집중한다는 의미가 파생된다.
쉽게 말하면 정신 집중, 정신 통일, 명상 등의 의미를 모두 지니고 있다 하겠는데, 당연히 무척 중요한 수행 방법이다. 그래서 그런지 <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이나 <수능엄삼매경>(首楞嚴三昧經) 등, 삼매를 설명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는 불경도 있다. 주의할 점은, 정신을 오로지 하나의 대상에만 집중하는 방법과, 그런 방법을 통해서 도달하게 되는 경지를 통틀어서 삼매라고 한다는 점이다. 삼매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예컨대 천태종에서는 다음과 같은 삼매를 거론한다.
1. 오로지 하나의 부처의 이름만을 계속해서 외우는 상좌삼매(常坐三昧), 2. 불상 주위를 계속 돌면서 아마타불의 이름을 외우는 상행삼매(常行三昧) 3. 앞서 언급한 두 가지를 동시에 행하는 반행반좌삼매(半行半坐三昧). 이 밖에도 종파에 따라서 불경을 끊임없이 외우는 삼매도 있다. 불교가 아닌 인도 철학의 요가 학파에서도 요가 수행의 최종 단계를 바로 삼매로 설정하고 있다.
삼매라는 것은 사실 말처럼 쉽지 않다. 쉽게 말하면 잡념을 없앤다는 것인데, 잡념을 없애고 말겠다는 잡념을 비롯해서 정말 끈질기게 잡념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요즈음에는 오히려 반(反)삼매가 미덕인지도 모른다. 요컨대 PC뿐만 아니라 사람도 멀티 테스킹을 잘해야 하는 시대! 워낙 다양한 매체 환경에 하루 종일 노출되어 있기 때문인지 몰라도(wired society 또는 wired individual이라는 말도 있다던가?), 날이 갈수록 삼매에 들기 힘들어진다. (지하철 안에서의 삼매도 포기하는 편이 좋다. 수시로 울리는 휴대 전화 소리!)
귀로는 휴대 전화로 친구와 통화를 하고, 눈으로는 PC 모니터를 주시하며 침략자를 물리치고, 입에는 담배를 물고, 손으로는 계속 키보드를 눌러대고, 더구나 키보드를 누르는 중간 중간에 피우던 담배를 재빨리 내려놓고 음료수 컵을 집어 들어 목을 축이기 까지 한다. 그 모든 일에서 삼매에 드는 경지, 그러니까 일종의 다중 삼매의 경지에 도달하는 경우가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존경스럽다. 미국의 첨단 정보통신 분야 최고경영자들이 정작 자택에서는 오프라인, 아날로그 환경의 생활을 누리기 위해 애쓴다는 신문 보도도 있었는데, 이해가 가는 일이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독서삼매, 게임삼매, 바둑삼매 기타 무슨무슨 삼매는 엄격히 말하면 삼매가 아니다. 그것은 몰두라고 해야 정확하다. 삼매의 궁극처는 어떤 대상에 깊이 몰두하는 상태 그 자체이기보다는, 그 어떤 것에도 몰두하지 않는(현상학의 용어를 빌리면 '도무지 지향하지 않는 의식'?) 상태에 가깝기 때문이다. 물론 앞서 언급한 삼매의 방법은 일단 무엇에 몰두하게 되어 있다. 아미타불의 이름만 줄기차게 외우는데 몰두함으로써, 다른 잡념이 사라진다. 그러나 아미타불의 이름을 외우는데 몰두하는 것 자체가 궁극처는 아님이 분명하다. 이미 언급했지만, 그것은 방법으로서의 삼매일 뿐이며, 그러한 방법을 통해 도달하는 어떤 경지와는 거리가 있다. 역설적이지만, 몰두를 통해서 모든 몰두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 하겠다.
앞에서 보았듯이, 국어사전의 뜻풀이가 '잡념을 버리고 한 가지 일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일'로 되어 있는데, 아마도 삼매경이라는 단어가 그 밑에 나오기 때문에 뜻풀이를 그 쪽으로 양보한 것 같다. 여하튼, 이른바 사회의 네트워크화가 진행될수록, 삼매에 대한 추구의 정도도 강해질 것 같다. 디지털 매체로 이루어진 수평적 그물망의 한 그물코로 존재하는 인간은 점점 더 내밀한 '자기만의 방'을 가꾸기 힘들어진다. 'I am connected, therefore I am'이 되어간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고, 그곳에 가고 싶다'는 말은 어쩌면 네트워크 사이에 섬이 있고, 그곳에 가고 싶다는 말로 바꾸어야 시의적절한지도 모른다. 그런 섬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 아마도 삼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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